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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승] Chateau Green

온앤오프 두 번째 전력 참여


Chateau Green

효진/승준

W. 말리



"네가 왜 여기 있어."


회식 술자리가 끝나고 차로 데려다준다는 후배의 말을 사양한 게 후회되었다. 아니, 그래 봤자 소용 없었으려나.

승준은 제 빌라 앞에 앉아 있는 인영을 보고 다시 올라오는 옅은 취기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살짝 열이 오른 얼굴을 식혔다.


"많이 마셨어? 조금 비틀거리던데.” 

 

자신을 보고 있었을 게 당연했지만, 그랬다는 게 막상 당사자 입에서 직접 나오니까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었잖아, 네가 왜 있냐고.” 

“헤어져도 각자 얘기밖에 안 하는 건 여전하네. 오래 사귀어서 그런가? 우리도 연애 초 때는 꽤 달달했었는데.” 


승준은 그가 한 말 그대로, 자기 할 말만 하는 효진과 영양가 있는 대화는 할 수 없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드라마의 주인공마냥 아련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효진을 무시하고, 승준은 현관을 지나 계단을 오르려 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지만 효진에게 팔이 붙잡혔다. 


“뭐, 너 할 말 없잖아. 손 놔. 왜? 이별 노래 듣다가 감정 이입이라도 된 거야?” 


효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승준의 팔을 놔 주었다. 쌩하니 등을 돌려 들어가려는 승준의 뒤에 대고 효진은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너 퇴근 시간부터 지금까지 두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너무 날카롭게 굴지 않아도 돼, 승준아.” 


맞는 말이다. 분명 갑자기 찾아온 구 애인에게 날카롭게 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신경을 긁는 경우는 예외로 둘 수 있다. 자처해서 기다려 놓고 동정을 바라는 듯한 말에, 결국 승준은 꾹꾹 눌렀던 감정이 터졌다. 


“누가 기다리랬어? 멀쩡한 애인을 버리고 간 건 너잖아. 이제 와서 아쉬워? 왜 당연한 것처럼 호소하는 건데? 웃기네, 누가 보면 내가 쓰레기인 줄 알겠다.” 

“그게 아니,” 


당황한 효진이 제대로 입을 열기도 전에 승준이 말에 끼어들었다. 


“씨발, 역겹다고. 진짜야. 울렁거려서 토 나올 것 같아. 너 때문에 몇 달을 울면서 보냈는지, 넌 모르잖아. 뻔한 대사 같아? 응, 뻔한 대사는 맞는데, 울다 지쳐 잠드는 게 뭔지 알 정도로, 그렇게 피폐하게 지냈어.”
 

마냥 착하고 순진한 승준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온 건 처음이었다. 비속어도 잘 모르던 아이였는데... 차마 뭐라고 위로할 수도, 안아서 달래 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효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악에 받친 승준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밖엔 없었다. 승준의 목소리는 어느새 물기가 차오른 울먹거림이 섞여 있었다. 


“헤어진 날부터 한 달을 꼬박꼬박 너희 집 앞에 찾아갔어. 한 번은 마주치겠지, 하는 그런 헛된 희망에 매일을 쉬지 않고 기다렸어. 그런데 정말 단 한 번을 못 보더라. 더는 못하겠어서 나도 이제 됐구나, 했는데 염치도 없이 창윤이한테까지 부탁하더라. 그래도 친구끼리는 연락하겠지 싶어서. 차라리 소식이라도 들으면 다행이지, 어떻게 걔랑도 연락을 끊어?” 


악다구니를 쓰고 나니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듯했다. 빌라 현관의 센서등은 꺼진 지 오래다. 어둠 속에서 효진이 있는 쪽을 바라보니, 그도 딱히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 같진 않았다. 승준은 몸을 돌렸다. 


“앞으로 다시는 안 보면 좋겠어. 버렸으면 끝까지 버린 상태로 두고, 절대로 찾아오지 마. 이젠 정말 마지막이니까, 잘 가.” 




일 년하고도 반 년만이다. 퇴원 수속을 밟으며 입꼬리에 걸린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여기요, 퇴원 축하드려요. 수많은 일거리에 찌들어 사무적인 말투로 전하는 축하임에도, 효진은 모든 게 자신을 반기는 것만 같았다.
 

- 퇴원했어?


하여간, 이창윤 성격 급한 건 알아 줘야 돼.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 가 아닌 퇴원했냐는 물음에 효진은 실웃음을 터뜨렸다.
 

“했어, 방금.”

- 승준이 아직 거기 살아.


본론만 짧고 간결하게. 굳이 잔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알아들을 만큼, 몇 년을 봐 온 두 사람의 통화 방식이었다.


“고마워. 끊을게, 나중에 보자.”

- 어제도 봤으면서. 꺼져, 징그러워.

“예의상이야, 예의상. 끊는다.”

- 야.

“또 왜.”

- 밥은 먹고 찾아가.


틱틱거려도 끝까지 자신을 챙기는 창윤에 효진은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점심을 챙기란 창윤의 걱정을 씹어먹는 걸로 식사를 대신 하고, 그 길로 곧장 승준의 집으로 찾아갔다. 3년이 넘게 매일같이 오갔던 길과 골목들.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 것이구나. 효진은 조급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승준이, 안 그래도 마른 애가 죽기 직전이야. 매일 너희 집 앞에서 죽치고 너만 기다려.'

'나한테 매일 전화해서 매일 같은 말만 해. 너 어디 있냐고, 뭐 하냐고. 중간에서 나는 무슨 죄냐.'

'그냥 사실대로 말하지 그래.'


급성백혈병. 갑작스러운 코피가 멈추질 않아, 그대로 응급실행을 한 효진의 병명이었다. 주치의는 바로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지만, 효진이 아득바득 우겨서 하루 뒤에 입원하기로 했다. 그날 하루 종일 고민을 하다가 저녁 무렵에 겨우 승준을 불러냈다. 해맑은 웃음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랑스러운 그에게, 효진은 차갑게 헤어지잔 말을 뱉었다. 승준의 눈에는 금세 그렁그렁한 눈물이 차올랐다.


"3년 동안 사귀었으면 지겨워질 만도 하잖아. 승준아, 사랑했어."


항상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향하기 전의 마지막 말은 오늘도 사랑해, 다정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오늘은 사랑했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과거형이다. 자신이 뭘 잘못했냐며 미안하다고 사과만 반복하는 그를 볼 수 없어,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하필 회식 날과 겹친 건지, 골목 어귀에서 그의 모습이 보인 건 어둑어둑해질 때쯤이었다. 그와 따뜻한 재회를 바란 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고생했던 승준이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하는 노파심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볼 면목조차 없었지만, 뻔뻔하게도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진실을 모르는 승준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겠지. 결과는 역시나였다. 가슴이 아렸다. 내가 헤어지잔 말을 했을 때, 네 기분이 이랬구나. 네 세상이 무너졌었구나.


3년간의 연애와 1년 반의 유예 기간, 그들은 완전한 이별을 했다.


물안개                - 류시화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 온앤오프 알페스 전력 두 번째 주제 '구 애인'으로 첫 참여했습니다. 이걸 시작으로 다음 전력부터는 되도록 꼬박꼬박 참여하려고 해요. 속편 있습니다! 이렇게 끝내기엔 너무 아픈 사랑 같아서, 속편에서는 더 좋은 재회를 만드려고 해요.

+) 제목의 의미는 속편에서 밝혀집니다! 속편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ㅠ 금방 쓸게요. ♡



ONF RPS @Mali_22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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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욵효] さくら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