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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셚] 사랑의 괴로움

온앤오프 다섯 번째 전력 참여


사랑의 괴로움

효진/창윤

W. 말리


※. 이번 글은 창윤이의 편지 형식으로 써 봤습니다.

※. BGM으로 태연의 'Fine' 혹은 Charlie Puth의 'We Don't Talk Anymore'을 추천해 드립니다.



효진이에게. 

 

안녕, 효진아. 마지막으로 편지 쓴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서 펜을 옮기는 게 좀 어색하다. 그냥 좀, 새삼스럽게 무슨 편지인가 싶지? 음... 조금 오글거리기는 하네. 그냥 쓰지 말까 봐. ㅋㅋㅋ 아냐, 그래도 내 마지막 말을 담을 곳이 여기밖에 없는걸.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까 바로 본론부터 들어갈까? 

있잖아, 나 그냥 잊을게, 효진아. 너와 내가 함께였던 추억 속에, 그리고 그 추억들의 대부분을 지낸 이 집에서 나 혼자 남아 있는 건 너무 힘들어. 이렇게 마냥 널 앓는다고 해서 네가 돌아올 것 같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그동안 고마웠다, 미안했다, 그런 구차한 이별 인사는 생략할게. 하나 아쉬운 건 우리의 사랑이 ‘현재진행형’으로 정의되지 못하는 거. 너랑 장난스레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던 때가 아직 눈에 선해. 그래서 더 힘든가 봐. 김효진, 넌 아니지? 야, 나 어차피 마지막인데 하고 싶은 말 다 써 버릴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려나? 너희 화공과 탑이랑 우리 과탑이랑 연애해서 새내기였던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같이 꼭 붙어서 MT 갔잖아. 내가 선배들 독촉에 폭탄주 마시려고 할 때 네가 내 손목 딱 잡고 완전 멋있게 “그만 마셔요.” 했는데.그때 나 진짜 진상이었던 것 같아. 네가 말리자마자 무슨 오기였는지 기어코 마시려고 했잖아. 결국 네가 뺏어서 대신 마셔 주긴 했지만, 뭐... 

우리가 운명까지는 아니어도 인연이긴 했나 봐. MT 뒤로도 계속 마주쳤잖아. 도서관에서도, 학식에서도, 카페에서도, 실험실에서도. 네가 일부러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만든 건 아닐까, 의심도 해 봤을 정도라니까? 뭐, 그렇다고 해도 모르는 척해 줄게. 아, 맞아. 너 그거 기억나냐? “내가 널 진짜 사랑하긴 하나 봐.” 하고 말했던 거.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를걸, 넌... 너는 그냥 나도 사랑해, 하면서 넘겼지만 나는 그때 진짜 진지했단 말이야. 매 순간이 너였고, 모든 것이 너였어. 무슨 드라마 대사도 아니고, 되게 오글거리네. 그래도 그때는 사실이었는걸. 

봐, 쓰다 보니까 내 푸념만 가득하게 길어졌잖아. 이 편지만 다 쓰면 나도 이 집 나갈 거야. 근데 왜 이렇게 질질 끌면서 쓰고 있냐고? 조금이라도 늦추면 내가 나가기 전에 네가 돌아올까 봐. 웃기지? 하루아침에 나 버린 애인이 뭐가 좋다고 아직도 기다려. 나, 바보 맞는 것 같아.

아, 그리고 나는 네 행동 이해하기 힘들어. 아무 말도 없이 집 나간 게 올해까지 포함하면 벌써 4년이야. 네가 아마 15년 11월쯤 나갔으니까 일수로만 따지면 2년 정도밖에 안되네. 15년에도, 재작년에도, 심지어 두 달 전인 작년에도. 너 왜 내 생일 선물 꼬박꼬박 보낸 거야? 차라리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게 하든가. 참 꿋꿋하게도 ‘H’라고 적어서 보내더라? 받는 사람은 ‘E’. 누가 봐도 네 이니셜, 내 이니셜인데. 재작년이랑 작년에 찬식 선배가 왜 뜬금없이 우리 집에서 술 약속 잡는 건가 싶었어, 그것도 내 생일 며칠 전에. 생일 축하 핑계로 오셨지만 선배가 중간중간에 폰 숨기면서 연락한 사람, 너 맞지? 고작 내 생일에 택배 하나 보내려고 찬식 선배한테 부탁하고 그러냐.

나 있지, 솔직히 그거 때문에 버텼어. 매 생일마다 도착하는 그 택배 하나로 지금까지 버텼다고. 재영이랑 민석이가 그만 좀 하라고, 이 집 좀 벗어나라면서 말리는데도 버텼어. 내년에는 네가 네 손으로 건네주지 않을까 싶어서. 이제는 정말 지친 것 같아. 너무 외롭고, 힘들고 그래. 그래서 너한테서 벗어나려구. 너와 나의 시작인, 너와 나의 모든 것이 담긴 이 집에서 떠나면 될 거야. 언젠가는 무덤덤해질 거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잊혀지겠지. 편지를 끝내는 이 시점까지는, 아직까지는 사랑해, 효진아. 안녕. 


창윤이가.



P.S. 스무 살에 처음 만났던 우리는 벌써 스물여섯이 돼 버렸어. 스물하나의 1월 1일에 네가 고백하면서 그 후로 꼬박꼬박 챙겨 준 생일선물, 네가 나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향수가 벌써 여섯 개야. 너와 보냈던 첫 번째 생일 날, 네가 향수 이름을 ‘영원한 창윤’이라고 정했다 했었잖아. 내 향수 베이스 향기로 깔은 아네모네의 꽃말이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라서 향수 이름을 그렇게 정한 거라고 그러면서. 찾아보니까 아네모네 꽃말이 여러 개인 데다 거의 슬픈 꽃말이더라?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사랑의 괴로움’이었어. 나는 너와의 사랑에서 괴로움을 느꼈다기보단 널 사랑해서 괴롭더라.

향수의 개수가 'lucky seven'이 될 이번 생일엔 너란 행운이 돌아올까 봐 기다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기대는 실망을 낳잖아? 더 이상은 상처받기 싫어. 정말 무너질 것 같아서. 그렇게 무너져도 일으켜 줄 네가 없을 것 같아서. 무서워서 도망가는 거야.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대. 정말 만약에 이번 생일에 네가 돌아온다면 후회는 하겠지만 실망은 없을 거야. 너도 나 때문에 나만큼 아파했으면 좋겠어. 저주하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아파한다면 너도 나를 사랑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이게 내가 너한테 원하는 마지막 바람이야.




+) 온앤오프 알페스 전력 다섯 번째 주제 '향수'로 참여했습니다. 이틀이나 지각해 버렸네요. ㅠㅠ 예전해 구상해 놓은 편지 형식을 '향수'라는 주제에 맞추다 보니 주제 요소가 많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다소 급하게 써 내린 감이 있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 편집하다 보니 따옴표 오타를 굉장히 많이 냈더라고요. 역시 저는 글을 쓰면 안 되는 운명... 이거 비하인드가 사실 효진이는 생공과였는데, 전력 참여한답시고 제가 화공과로 바꿔 버렸어요, 헤헤. ^^(퍽 직접 편지지에 써 보면서 노력했는데 편지 느낌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 ㅠㅠ

ONF RPS @Mali_22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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