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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승] Chateau Green (續)

속편


Chateau Green 속편

효진/승준

W. 말리



승준은 눈물범벅인 얼굴을 들어, 창윤이 탁자 위에 놓고 간 편지를 보았다. 몇 분 전만 해도 보지 않겠다며, 도로 들고 나가라며 발악을 했던 그 편지가 지금은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온갖 악을 다 쓰며 편지를 찢으려 드는 승준에게, 창윤은 잠깐만 진정하고 얘기라도 들어 보라면서 그동안의 효진이 어떻게 지냈고, 진심이 어땠는지를 말해 주었다. 얘기를 듣고 나서 효진이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 같은 건 들지도 않았다. 그동안 혼자서 아픔을 견디며 투병 생활을 했을 효진이 걱정되었고, 하나도 눈치 못 챘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승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탁자 위에 놓여진 연보라빛 편지를 집었다. 갑작스럽게 효진과 이별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3년 동안 사귀었으면 지겨워질 만도 하잖아. 승준아, 사랑했어.’


무슨 말이 담겨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깔끔하게 두 번 접힌 편지지를 펼쳤는데도 연보라빛 직사각형에 흐릿한 검은 자국들만 보였다. 승준은 훌쩍이며 소매로 눈가를 닦은 후, 다시 편지지로 눈을 돌렸다.



승준이에게.

염치없지만 네게 꼭 사과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네가 이걸 볼 때쯤이면 창윤이에게 얘기를 들었단 소리겠지?

첫 번째로는 지금까지 속인 거 미안해.

더 중요한 두 번째, 그때 내가 잘못 말한 거 미안해.

그때 하려던 말, “사랑했어”가 아닌 “사랑해”야.

사랑해, 승준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조금 오글거리겠지만 나한테는 네가 전부야.

네가 내 세상이야, 승준아. 




효진의 편지를 받고 난 뒤로 4년이 흘렀다. 승준은 창윤에게 몇 번이나 효진의 행방을 물었지만, 효진은 외국으로 나간다는 말만 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창윤이 간간히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을 때 슬쩍 사는 곳을 물어봐도 효진은 승준이 물어봤냐며 대답을 회피했단다. 승준은 효진에게 미안한 마음과 보고 싶은 생각을 누르기 위해 일에만 전념했다. 그런 승준은 한 부서의 팀장이 되었고, 지금은 효진의 생각이 나도 예전처럼 눈물부터 쏟아지지는 않았다. 


승준의 리더십과 팀원들의 화합력 덕분에 꾸준히 발전한 승준의 부서는 결국 실적 1등을 차지했고, 보너스와 포상 휴가까지 받아서 다같이 제주도로 휴가 겸 워크숍을 가기로 했다. 제주도는 사귀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어서 그런지 새삼스럽게 효진이 떠올랐다. 


누가 무슨 향수를 썼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죄다 섞여 버린 여직원들의 향수 냄새와, 들떠서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남직원들 사이에서 승준은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다들 바다로 놀러 나가겠다며 분주한 틈에서, 승준은 혼자 슬쩍 빠졌다. 여직원들의 기세에 끌려갈 뻔했지만, 승준은 비행기를 오랜만에 타서 머리가 아프단 핑계로 겨우 빠질 수 있었다. 


호텔의 아늑한 침대를 만끽하려는 찰나에 걸려 온 외국 브로커의 전화 때문에 제주도에서까지 승준의 노트북은 쉴 틈이 없었다.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일한 덕분에 그는 곧바로 침대에 쓰러져 곯아떨어졌다. 승준이 시끄러운 벨소리에 잠을 깬 건 해가 서서히 떨어질 즈음이었다.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자마자 현승희 차장의 높은 데시벨이 들렸다. 


- 팀장님! 깨셨어요? 아까 막내들이 깨우러 갔는데 못 일어나셨다구,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지그, 방금... 방금 일어났어요.” 

- 저희 이제 저녁 먹으러 갈 건데, 시아랑 유빈이는 저랑 쇼핑 중이구요, 막내들은 지금 팀장님 모시러 갈 거예요! 저희가 좋은 데 예약했어요! 

“알았어요...” 


승준은 몽롱한 정신에, 전화를 끊고도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많이 흐트러지지 않은 머리를 매만지고 양치를 한 후, 코트를 챙겨 입고 프론트로 내려갔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제 조용히 호텔로 돌아가나 싶었더니 아직 주황빛과 분홍빛이 오묘하게 섞인 노을이 지고 있었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지... 승준의 부서 실세인 현 차장과 여직원들은 SNS에서 유명한 그린티 카페의 사장이 훈남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승준을 포함한 남직원들은 그녀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Chateau Green. 샤토 그린...? 승준은 카페 간판에 적힌 chateau green이 그저 외국 녹차 종류인가 보다, 하며 들어갔다. 딸랑- 하며 문에 달린 종이 울렸지만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혹시 문 닫을 시간이신가요? 아직 영업 시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 


손님도, 사장도 없는 카페에 불안감을 느낀 현 차장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카페 안쪽 비품실 같은 곳에서 잠시만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승준은 그냥 비슷한 거겠지, 하며 이 층으로 올라가는 직원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밑에서 사장과 얘기를 하고 올라온 현 차장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원래 오늘은 쉬는 날이다, 가끔 영업을 할 때도 있어서 정기적 휴일이라고 공지한 건 아니다, 챙길 게 있어서 잠깐 문을 열었는데 우리가 딱 맞춰 들어온 것이다. 뭐, 대충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승준은 폰을 쳐다보다가 현 차장이 팔을 툭 치길래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팀장님 뭐 드실 거냐구요. 애들은 다 정했고, 팀장님만 고르시면 돼요. 제주 녹차, 그린티 라떼, 그린티 프라페 등등 있어요.” 

“아아, 난 됐어요. 그린티는 별로라서.” 

“아메리카노도 있던데요? 다른 건 죄다 그린티 관련된 거면서 유일하게 다른 메뉴가 아메리카노예요. 그러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 

“이상할 게 뭐 있어요. 가장 기본적인 커피라서 그런가 보지. 저는 그럼 아메리카노 마실게요, 아이스로.” 


승준이 내민 카드를 받아든 현 차장이 주문을 하러 내려갔다. 계산까지 마친 현 차장이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자, 직원들은 수다 세상으로 빠져 버렸다. 


“아아, 진짜 아쉽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사장도 잘생겼지만 직원도 진짜 잘생겼다는데.” 

“그니까요. 목소리가 지구 내핵 뚫을 수 있을 것 같대요!” 

“헐, 차장님! 그걸 왜 지금 얘기하셨어요... 제주도 동굴 보이스가 여기 직원이었구나...” 


얼마나 수다에 몰두하면 진동벨이 울리는 것도 못 느낄까. 승준은 투덜거리며 진동벨을 들고 일어섰다. 


“팀장님, 저희가 내려갔다 올게요.” 


아직은 막냇동생 같은 풋풋한 사회 초년생인 민석과 유토가 세 여직원의 말을 끊고 조심스럽게 승준의 눈치를 보았다. 


“됐어요. 내가 갔다 오면 돼. 혼자 들고 오기에 벅차면 유토 부를게, 그때 좀 도와줘요.” 


쟤네 수다에 희생되느니 음료 셔틀이 훨씬 더 낫지. 승준은 속으로 본심을 중얼거리며 윙윙- 울려대는 진동벨을 손에 꼭 쥐고 계단을 내려갔다. 층계참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 커피 머신을 정리하는 사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톤다운된 짙은 붉은색의 머리와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검은색 시계. 너무 익숙했다. 어쩌면 익숙하다는 느낌보다는 항상 그리워했던 것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니겠지, 효진이는 외국으로 나간다고 했다잖아. 승준은 애써 진동벨을 주문데스크에 올려 놓고 트레이로 눈을 돌렸다. 단정한 느낌의 연보라빛 트레이에는 주문한 음료들과 주문하지 않은 케이크 한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저기... 조각케이크는 주문 안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늘 생일이신 분이 계신 것 같아서요.” 


승준은 자신의 팀원들 중 누구의 생일이 오늘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많이 익숙한, 그리고 너무 그리워했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자마자 승준의 모든 사고회로는 얼어 버렸으니까. 그와 동시에 몸을 돌린 카페 사장의 얼굴은 승준의 사고회로를 급격히 가동시켰고, 승준의 눈망울은 금세 그렁그렁해졌다. 


“일이 얼마나 바쁘길래 자기 생일도 잊어요? 사실 이거 오늘 제가 먹으려고 산 건데, 특별히 서비스로 드릴게요. 특별한 손님이시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정한 웃음을 띠며 말을 거는 효진이 자신의 눈 바로 앞에 있음에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저 효진을 닮은 친절한 사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김효진, 그 세 글자가 혀끝에서 맴돌기만 했다. 입 밖으로 내보내려 입을 열어 보아도, 울먹임에 목이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효진은 그런 승준의 상태를 다 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샤또 그린, 제 카페의 이름이에요. 들어오실 때 간판 보셨죠? 혹시 무슨 뜻인지 알아요?” 


승준은 울지 않으려 그렁그렁한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제 탄생색이자,”


효진은 손을 뻗어 승준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닦아 주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탄생색이에요.” 




+) 헤헤, 드디어 샤또 그린을 완성했습니다!! 사실 거의 다 써 놓고 올리려고 했는데 딱 맞춰서 그 논란 때문에... 넵, 변명 맞고요... 다음부터는 열심히 살겠습니다...(?) 맞다, 효진이 카페에 그린티밖에 없으면서 아메리카노만 있는 건 승준이가 아메리카노만 마신다고 했던 거 노린 거예요. ㅎㅎ

+) 아, 그리고 혹시 눈치를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같은 회사 선배인 누나 그룹의 귀여운 승희, 유아, 비니 님들♡께서 특별 출연... 우정 출연인가...? 어쨌든 그분들이 맞으십니다! >_< 사실 그냥 써도 되는데 제 사심이 들어간 거예요... 금방 다음 글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ONF RPS @Mali_22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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