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효셚] 나의 항아에게. 01

효진/창윤 장편


나의 항아에게.

효진/창윤

W. 말리



*

왕정정치로 바뀐 지도 어엿 10년이 다 되어 간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생활하는 거냐며 들떴던 사람들은 어느새 주름 하나 없는 오피스룩 차림이었고, 무슨 고릿적 정치냐면서 불만을 토로하던 이들도 ‘왕’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였다. 친환경 한옥에서 딱딱한 회사로 출근하는 이질적인 풍경에 다들 익숙해져 있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직계 후손이 새로운 왕정을 이끌어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하던 사람들 덕분에 창윤의 아버지가 왕좌에 오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창윤은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자마자 왕자가 되었다. 신분이 바뀌었다고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두 번의 교복을 갈아입으며 입학하고 졸업했다.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입학과 졸업만 평범했을 뿐, 등교부터 하교까지 검은 양복의 보디가드들이 떨어지지 않았다. 창윤은 건장한 보디가드들 덕분에 아무 탈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창윤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고, 창윤 역시 친구들에게 편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림 진짜 잘 그린다. 나도 좀 알려 줄 수 있어?”


폐허 같던 생활에 시원한 밤공기처럼 찾아온 효진은 창윤의 유일한 쉼터였다. 한 명의 친구도 못 사귄 채로 졸업해 버린 중학교 때문에, 창윤은 설렘보다는 좌절에 휩싸인 상태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나마 평소에 좋아했던 미술로 숨통이나 트려고 가입한 디자인 동아리에서 친구를 사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드라마 대사 같네, 그거. 알지~ 우리나라 둘째 왕자님, 이창윤이잖아. 아, 이제는 세자구나.”

“내 경호원들 안 무서워?”

“외로워 보이길래. 경호원이 너 지키라고 있는 사람이지, 다가오는 친구 막으라고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 전의 아이들은 모두 보디가드들 때문에 창윤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아마 자신이 다가가면 접근부터 제한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지. 그런데 효진은 창윤의 외적 요소에 개의치 않고 자신과 똑같은 학생이자 친구로 대해 준 것이다. 옛날 옛적 추억인 것만 같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사귀는 친구가, 창윤에게는 당연히 큰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름... 알려 주라.”

“설마 감동받아서 우는 건 아니지? 김효진이야. 번호는 안 물어봐?”


큭큭거리며 태연하게 농담을 던지는 효진의 모습은 가히 넘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창윤은 나 같은 애가 이런 아이와 친구를 해도 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효진... 효진아, 있잖아... 괜찮다면 친해지고 싶은데.”

“뭘 그런 걸 물어. 대화한 순간부터 친구인 거지.”


창윤은 효진을 만난 이후부터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과외와 정치 회의가 없을 때면 학교에 남아 효진과 농구를 하기도 했다. 효진의 중학교 후배인 재영도 소개받아서 삭막했던 창윤의 학교 생활은 점점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이 즐거움을 학교에서만 유효했다.


단조롭고도 고풍스러운 담벽이 둘러싼 궁궐은 고결함, 그 자체였다. 창윤은 그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거처인 동궁전 안에서만. 모든 언행에 제약을 받았고, 마음대로 화낼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신하들은 창윤의 사사건건을 감시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 저하, 책을 가까이 하셔야지요.

- 저하, 핸드폰에 의존하시면 안 됩니다.

- 저하, 폐하의 뒤를 이어 훌륭한 왕이 되십시오.


저하, 저하, 저하. 창윤에게 들리는 모든 말의 시작은 같았다. 세자였던 형이 입원해서 창윤이 세자에 책봉된 지도 벌써 육 년이다. 창윤이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창윤의 형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사고를 당했다. 금방 회복되길 바랐지만 평소 몸이 약했던지라 온갖 합병증을 다 초대해 버린 격이었다. 그 때문에 창윤은 자연스럽게 세자 자리에 올랐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효진과 재영을 만날 수도 없어서 창윤의 스트레스는 날로 쌓여 갔다. 국내 상황만 알기도 벅찬데 국외 정세 파악에 외교 공부까지. 하루도 마음 편히 쉴 날이 없었다.


가끔 연락할 수 있는 초등학교 동창인 승준이나 대학생이 된 재영은 권력을 조금 더 잡으니 좋지 않냐며 물어왔지만, 창윤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효진은 무슨 시험을 준비 중이라며 연락도 잘 닿지 않았다. 창윤은 매일 밤 자신의 지위가 버거워 눈물을 흘리고, 또 자신이 세자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나날이 창윤의 속앓이가 깊어갈 때쯤, 효진이 호위무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채로 모습을 보였다.


21살의 봄, 벚꽃잎이 사르르 떨어지는 동궁전의 앞마당에서 창윤과 효진은 서로의 친구가 아닌, 세자와 호위무사로 서로를 맞이했다.




+) 으, 뭔가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있는 대로 다 써 버리니까 평서문만 가득 채워졌네요. ㅠㅠ 몇 번씩이나 때려치울까 고민했지만, 제가 보고 싶은 걸 다른 분한테 가서 써 달라고 찡찡거릴 수는 없어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 이번 년도부터는 공부 좀 하려고, 다음 주 정도부터 시험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주말쯤이나 다음 주 초반에 다음 편 하나 더 올릴게요. 그리고 4월 중반이 지나면 다시 써 오겠습니다... 역시 제 인성은 답이 없네요...

ONF RPS @Mali_22_13

말리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댓글을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입니다.

#15
[효셚] 나의 항아에게.
#17
[효셚] 나의 항아에게.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