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효승] 우리 친구 맞지?

효진/승준 단편


우리 친구 맞지?

효진/승준

W. 말리


*가독성이 좋지 않은 것 같아 효진이가 한 말은 빨간색, 승준이가 한 말은 파란색을 입혔습니다. 효진이가 하는 말들 중 그대로 검은색인 것은 속으로만 한 독백 정도로 보시면 돼요. ㅎㅎ



이승준이 헤어졌다. 놀이터 구석 벤치에 앉아 매달리듯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그냥, 어색한 손길로 등을 토닥이는 것밖에는. 대성통곡이 간헐적인 훌쩍거림으로 변할 때까지 내 옷은 천천히 젖어갔다. 승준이가 고개를 들어 젖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효진아. 응, 승준아. 사랑이 뭐야? 네 질문에 울고 있는 건 너인데, 왜 내 목이 메는지.


그건 말이지, 이게 사랑이야. 너 때문에 아픈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아파하는 네 곁에 있어 주는 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공명이 되어 울렸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모솔한테 뭘 묻냐. 얼렁뚱땅 넘기려니 승준이 다시 저를 꼬옥 안아 왔다. 효진아. 왜, 또. 미안해, 항상 너한테 기대서. 그날 새벽 공기는 유난히도 찼다.


하지 마.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길래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 줬다. 으응, 그치만... 뭐가 그치만이야. 후회할 것 같아서... 연락해서 후회하겠지, 바보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젠 상처받는 걸 즐기는 건지 의심까지 될 정도로. 어떻게 매번 쓰레기만 골라서 연애하는 건지 그저 신기할 노릇이었다. 너만 상처받을 거 알면서 하고 싶냐? 알겠어...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시무룩한 표정이 거슬렸다.


이승준은 일어나서부터 점심을 먹고 난 지금까지 계속 폰을 손에 꼭 쥐고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자기를 잠깐 가지고 놀다가 버린 새끼가 그렇게 좋은가. 폰을 빼앗고, 입술 위에 손가락 하나를 얹어 주었다. 에퉤퉤, 뭐해!!! 입술에서 피 나겠다. 흥, 지지야. 내 손가락은 더럽고, 네 입술에 몇 번이나 닿았을 그 새끼들 입술은 깨끗한가 봐? 치기 어린 나의 질투심은 너무 보잘것없었다.


폰을 뺏긴 후로 심심하다고 뒹굴거리고 있더니, 금세 잠들어 버린 이승준이 마냥 귀여웠다. 깨어 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조잘거리던 참새 같은 이승준은 아기 같았다. 잠들었을 때 가장 천사 같은, 희고 여린 피부와 새근새근 들리는 숨소리 같은 것들 전부. 아기보다 순수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더 많았다. 감고 있음에도 큰 눈은 내가 이승준의 모든 것들 중 제일 사랑하는 부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가를 살살 어루만졌다.


또... 내가 모를 줄 알구...

깨어 있었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잠꼬대였구나... 다행이다. 이승준이 잠들었을 때마다 하도 눈가를 만지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 새끼들보다 훨씬 잘해 줄 수 있는데. 내가 너 진짜 많이 좋아하는데. 나지막이 속마음을 고백하는 것도 습관이었다.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던 이승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어깨에는 승준이가 덮고 있었던 얇은 이불이 걸쳐져 있었다. 부엌 쪽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나도 잠들었었나. 몽롱한 정신에 눈을 몇 번 끔벅거리다 일어나서 이불을 대충 개켰다.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욕실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부엌이 아니라 욕실인가.


야! 너, 너... 이승준!!!


응?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앉아 있던 이승준이 나른하게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씨발, 너... 겨우 그 새끼 때문이면... 김효진? 무슨 소리야... 아니었다, 다행히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 색깔도 투명했다. 놀랐잖아... 옷은 왜 입고 들어갔어. 이승준이 투명한 웃음을 터뜨렸다. 김효진 너... 아하하, 진짜 웃겨. 쪽팔릴 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모르겠지만, 이승준이 항우울제를 먹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소린데, 왜 굳이 힘든 연애만 골라서 하는지.


음, 그냐앙... 영화 따라 해 봐쏘, 궁금해서. 계란말이를 오물거리며 아까의 진실에 대한 공방전을 펼쳤다. 걱정되게 왜 그랬냐 다그치는 나와, 별거 아니었으니 걱정 말라는 이승준. 야, 아무래도... 왜? 아냐, 아무것도. 김효진 싱거워. 내가 어떻게 말해. 아무래도 내가 너 많이 좋아하나 본다고, 그래서 그만큼 걱정이 많은 것 같다고, 내가 너한테 이걸 어떻게 말해.


머리카락 끝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방에 들어가니, 이승준이 이불 속에 폭 파묻혀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다 씻었어? 뭐야, 왜 머리 안 말렸어. 귀찮아. 침대에 걸터앉으니 이불 위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영화 다운받고 있어. 무슨 영환데. 몰라, 로맨스라는데? 흔하고 널린 게 로맨스 영화였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잘 이루어지는 로맨스가, 현실에서는 이승준도 실패하고 나도 실패했다.


다운로드 속도는 느렸고,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노트북 화면만 쳐다봤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계속 떨어졌다. 에휴, 드라이기 가져와 봐. 말려 주게? 응, 다운 속도 느리잖아. 순순히 화장실에서 드라이기를 꺼내 왔다. 찬 바람으로 말려 줘. 감기 걸릴 텐데? 너 손 데일 수도 있잖아. 내가 아직도 애인 줄 알아. 어두운 방 안에서 노트북 불빛에만 의존한 채로 이승준이 젖은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나른했다. 따뜻한 바람과, 그리고 이승준의 손이.


너 졸았지? 아니야. 아니긴, 방금까지 고개 꾸벅거렸으면서. 다운 다 됐으니까 너도 누워. 어느새 드라이기까지 갖다 놓은 이 아이를 내가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너 근데 졸려서 영화 볼 수는 있어? 그냥 잘까? 아니, 너랑 같이 보는 영화인데 내가 어떻게 잠을 자겠어. 괜찮아, 잠 다 깼어.


주인공과, 주인공 애인과, 주인공 친구가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 주인공은 예쁘게 연애를 하는데, 친구가 주인공을 짝사랑해서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다소 뻔한 스토리였다. 근데 내용이 왜 익숙할까. 나 이 영화 봤었나. 왜? 몰라, 익숙한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 깨달았다. 왜 익숙한지 알았어. 봤던 거야? 아니, 말해도 돼? 왜 나한테 허락받아. 말하기 싫음 말고. 침묵이 흘렀다.


봤던 거 아니고, 이거 우리 얘기야. 우리 얘기라니, 무슨... 그니까... 내가 너 좋,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돌이키지 못할 선을 넘으려는데, 이승준이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잠깐만, 진짜 잠깐만. 효진아, 우리 친구 맞지? 비참했다. 나와 이승준 사이에 그어진 친구라는 선을 넘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이승준이 넘지 못하게 막은 거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로 빤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왜인지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내 입을 가로막은 승준이의 손을 잡아서 내렸다.


난 아니야. 좋아해, 이승준.




+) 포타 업뎃 오랜만인 것 같네요... 또 망작으로 돌아왔지만...^^ 혹시 글자에 색 입힌 게 가독성이 더 안 좋은 것 같다 싶으면 알려 주세요!! 전부 검은색으로 하거나 아니면 눈에 더 편한 색으로 시정하겠습니당!

ONF RPS @Mali_22_13

말리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댓글을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입니다.

#15
[효욵효] さくら 03
#17
[효승] 그 여름부터 크리스마스까지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