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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승] 그 여름부터 크리스마스까지 上

효진/승준 단편


그 여름부터 크리스마스까지

W. 말리

효진/승준


#1 

열 살의 여름 언제쯤, 초인종 소리에 며칠 전 이사 온 옆집이겠거니, 하고 문을 열었다. 시루떡이 쌓인 플라스틱 접시를 들고 우물쭈물 서 있던 아이. 엄마에게 들어서 나이는 알고 있었다. 이름이...
 

"저기... 이거, 빨리 받아... 요..." 

"풉... 푸흐흡..."
 

열 살이어도 처음 만난 사이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웃음이 새어나간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걔는 나보다 키가 약간 작았다. 내가 내려다볼 수 있는 까만 머리카락과, 나를 살짝 올려다보는 까만 눈동자가 예뻤다. 왼손으로 접시를 받아들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우리 같은 나인데. 난 김효진.” 

“아...” 


창피한지 급격히 얼굴이 붉은색으로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이상했다. 지금까지 친구를 사귀면서 한 번도 귀엽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는데. 내 앞에 서 있는 애는 마치 강아지 같이 귀여워 보였다. 어쨌든 걔는 내 손이 더 이상 무안해지지 않게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고는 나는 이승준, 그리고서는 바로 옆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2 

“아, 진짜... 김효진! 너 내가 그 얘기 그만 퍼뜨리고 다니랬지?” 


그때처럼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채로 씩씩거리며 효진을 노려보는 승준과 달리, 효진은 빙글 웃으며 여유만만이었다. 


“왜애~ 내가 없던 일 지어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크크, 그때 진짜 웃겼는데. 존댓말 썼다가 손 슬쩍 스치고서 나는 이승준. 아하하, 진짜 개웃겨.” 

“이승준 95라며. 그럼 존댓말이 아예 잘못된 것도 아니지, 뭐.” 

“김효진. 지금 이창윤 말에 동조하면 넌 평생 아웃이다, 완전 빠빠이.” 


효진은 장난스럽게 슬쩍 눈을 굴리고서는 승준에게로 가 어깨동무를 걸쳤다. 아직은 승준이 효진보다 약간 작았다.
 

“그럼 우리 승준이 말을 들어야지~ 이창윤 너도 8일만 늦었으면 똑같은 신세면서 뭘 그래. 야, 이참에 둘 다 나한테 형이라고 해 봐.” 

“이창윤, 우리 편 먹자.” 

“콜.” 


그 교육열 빡세다고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특목고와 예고 진학을 앞둔 중3의 교실이라기엔 너무 시끌벅적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때는. 이승준이 김효진 옆에, 김효진이 이승준 옆에 매일매일 붙어 있을 수 있었으니까. 


 

#3 

“너랑 처음 만났던 때가 아마 이맘때일 텐데, 그치.” 

“그러게. 우리 열 살 때부터 지금까지 8년째네.”
 

새로운 친구들을 탐색하다가 시험 치고, 친해진 친구들과 놀다가 시험을 치니 어느새 고1 여름방학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승준이 효진보다 조금 더 컸다. 뭐, 효진의 말로는 승준이 말라서 원래 키보다 커 보이는 효과가 있는 거라고 하지만. 승준은 전공 때문에 체중 관리를 하느라 원래도 말랐던 몸에서 살이 더 빠지니, 마냥 동그랗기만 하던 눈도 더 커 보였다. 


“어때, 적성은 맞아? 아, 너 때문에 불닭 같이 먹을 애가 사라졌잖아아아! 이창윤 매운 거 더럽게 못 먹어.” 

“야, 나도 배고프거든? 그리고, 넌 내가 불닭 친구밖에 안 되냐?” 

“아니? 불알 친구.” 

“미친, 필터링 좀 하라고!” 

“아아아아아~ 뭐 어때, 둘밖에 없는데. 귀엽네.” 


겨우 말 하나에 얼굴이 붉어지는 승준이 마냥 귀여웠다. 처음 만난 날처럼, 항상 변함이 없었다. 수줍음도 부끄러움도 많고, 바로바로 얼굴에 티 나는 이승준. 거기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망뭉이 같고, 냥이 같고, 잘생겼고, 가끔은 야하고, 그리고 나에게 특별한. 그런 이승준은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생기고, 뭐... 귀엽... 쨌든 그렇게 멍하니 보면 닳겠다.” 

“뭐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못생겼나 싶어서 본 거거든?” 

“씨이, 말 바꾸기 있냐?”
 

승준은 금세 눈을 흘기며 너도 못생겼어, 라고 톡 쏘아붙였다. 삐쳤어? 하고 물으니 언제나처럼 돌아오는 대답은 안 삐쳤거든요. 그러면서도 살짝 삐죽거리는 입술은 감정을 숨기질 못했다. 효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왜 웃냐며 씩씩거리는 승준에게 효진은 별것 아닌 듯한 말투로 태연하게 귀여워서 그러는데? 라며 큭큭거렸다.
 

“김효진 재수 없어.” 

“아, 왜애~” 

“너 또 고백 받았다면서.” 

“아씨, 이창윤 말하지 말라니까.” 

“이창윤 아니거든? 왜 또 찼는데?” 

“그야...” 


효진은 승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갑작스레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승준은 크흠흠, 헛기침을 뱉으며 눈을 피했다. 


“이 형님이 먼저 연애하고 그러면 우리 승준이 외로워할까 봐 그랬지.” 

“참나, 고백은 자기만 받는 줄 아나.” 

“뭐? 야, 너 고백 받았어? 누구한테?” 


효진은 무의식적으로 목소리가 커졌다. 생각도 못한 과민반응에 놀란 승준이 커진 눈으로 효진을 쳐다보았지만, 효진은 개의치 않았다. 집요하게 쳐다보는 효진 때문에 도리어 당황한 건 승준이었다.
 

“아, 아니... 받았다는 게 아니고... 근데 왜 난리야? 어이없네.” 

“이승준 내 건데 누구 마음대로 데려가.” 

“하아... 너 병원 좀 가 볼래? 지랄도 병이래, 아주 심각한 병.”
 

승준이 받았다는 건 아니라고 말했을 때, 효진은 승준 몰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어제 사 둔 아이스크림이나 꺼내 오려고 몸을 일으키느라 장난스럽게 승준의 배를 짚었는데, 장난인 것 같은, 정말 장난이어야만 하는 촉감에 효진의 표정은 굳어졌다.
 

“너, 복근 생겼어...?” 

“다이어트 겸 몸선 만드느라. 그래 봤자 잔근육이라서 먹으면 빠져. 엥, 물어봐 놓고 어디 가?” 

“화장실, 급해서. 올 때 아이스크림 가져올게.”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은 정말 1도 없었는데. 하얗고 마른 몸에 미세한 근육들이 붙었다니. 원체 살도 안 붙고 근육도 안 붙는 몸이라서 그런지, 근육이 생겼어도 별로 티가 안 나는 것 같았다. 효진은 속으로 미쳤냐는 자책과 애국가를 반복하며, 찬물로 세수만 열댓 번은 했다.
 

“어이구, 김 사장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서 오셨나 봐요~” 

“닥치고 줄 때 먹어라.” 

“스크류바 진짜 반 년만이다. 불닭 먹고 나면 맨날 이거 먹었잖아.” 

“어제 누가 방학식 하고 있을 때 사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하필 밀가루 금지 다이어트 중이란 게 생각나서 못 사고 이거만 샀네요.” 


둘은 포장지를 벗기고 짠, 건배를 했다. 효진은 언제나처럼 야금야금 베어물고, 승준은 입에 넣고 돌리며 빨아먹었다. 평소처럼 무심코 승준에게 시선이 닿은 효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친구, 문제가 참 많아... 분홍색 물이 녹아드는 입술에 자꾸 시선이 갔다.
 

“내 입술이 섹시하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입술도 그렇게 못생겼냐...” 

“아, 김효진!!!”
 

우당탕탕,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그렇게 효진과 승준의 열일곱 여름은 서로의 집을 번갈아 가며 먹고, 자고 놀면서 보낼 수 있었다. 


 

#4 

그 여름방학 이루로는 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효진의 학교는 전국 상위권 특목고이니 만큼 교내의 모두가 서로의 적이었고, 그건 승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도 승준은 창윤으로부터 틈틈이 효진이 고백을 받았단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등굣길에 또 고백을 받았냐며 효진을 추궁했고, 형님이 널 두고 무슨 연애를 하겠냐는 효진의 뻘소리를 들으며 왜인지 모를 안심을 했었다.
 

“나 연애한다?” 

“잘됐, 뭐?” 

“1학년 후배랑. 애들이 두 살 연하를 채 가냐고, 나한테 도둑놈이래.” 

“야, 아니... 무슨 소리야. 갑자기 웬 연애... 나는, 아니 너 고쓰리잖아.” 

“어차피 난 실기인 데다 걔도 같은 전공이라 방해 안 돼.” 

“아니, 이승준... 너, 내가,” 

“빠이, 학교 안 가? 너 그러다 지각한다.”
 

며칠 전 콩쿠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아파트 단지 앞에서 멈춘 버스 차창 너머로 효진을 봤었다. 효진은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와 함께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졌다. 하지만 왜? 무슨 권리로? 승준은 창윤에게 연락했다. 창윤이 보내 준 캡처본 속에서 그 여자애는 다른 사람과 연애 중까지 띄워 놓은, 버젓이 임자 있는 애였다. 그래도 승준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결국 질투인지 오기인지, 자기가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효진에게 연애 소식을 알렸다. 그래 봤자 효진은 신경도 안 쓸 텐데. 


[갑자기 뭐냐 언제부터였는데 그래도 썸 탈 때부터는 말해 주지 우리가 몇 년인데... 형님 존나 서운하다ㅠㅠ 쨌든 축하하고 이따 봐] 


“... 이것 봐. 신경은 개뿔... 기다렸다는 듯이 축하해 주는구만.” 


승준의 생각과는 달리 효진은 승준의 연애에 엄청나게 신경이 쓰였다. 승준이 고백을 받은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누가 자기한테 고백을 했다느니, 거절하고 싶은데 미안해서 어쩌냐느니, 내일 학교에서 마주치면 어떻게 하냐느니, 꼬박꼬박 말해 주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전조도 없었던 데다, 하루 아침에 갑작스러운 통보를... 띠링- 승준에게서 답장이 왔다. 


[미리 말 못한 건 미안 요즘 바빠서 깜박했다 이따 못 볼 것 같아 후배랑 같이 집 가기로 해서]
 

효진은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승준이 걔를 진짜 많이 좋아하면 어떡하지. 

 

ONF RPS @Mali_22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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