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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션] 나의 항아에게. 07 (Fin)

완결 기념 약수위


나의 항아에게.

효진/창윤

W. 가을


*******

"... 진심이야?"


아래로 처져 있던 창윤의 젖은 속눈썹이 살며시 올라가며, 안에 감춰져 있던 정말 믿고 싶다는 눈동자가 드러났다. 대답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응. 나 원래 운명론 안 믿는데, 그때부터 믿었어."

"열일곱이면, 우리 그때 막 친구 됐는데. 설마 첫눈에 반하고 막 그런 건가?"


창윤은 도저히 안 믿겨서 마지막 질문은 반쯤 장난스럽게 물어봤다. 대답 대신 창윤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맞물리는 효진의 손가락에, 서툰 첫 입맞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끌려서 저질러 버렸다. 너 되게 못됐다. 지금까지 숨기고. 입술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와 효진의 볼을 잡고 죽죽 늘이는 창윤을 달래기 위해 효진은 장난치듯 가벼운 뽀뽀를 멈추지 않았고,


"읏... 아, 아니... 그게..."


정말 우연히 창윤의 성감대(?)를 발견해냈다. 창윤의 손을 조물거리며 엄지와 연결된 그 도톰한 안쪽 살에 입술을 붙였다 뗄 때 그런 소리를 들을 줄 누가 알았겠어. 제 입술 때문에 간지럼을 탄 건가 싶었지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흠칫, 하고 당황한 창윤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효진은 절망했다. 미친 게 아닐까, 하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처맞을 것 같으니까 육하원칙 다 생략하고 형용사만.


"괜찮아...?"

"그... 본 적 있어... 왜 있는지는 나도 모르는데... 저번에 네가 성냥 꺼냈던 그 서랍... 맨 아래..."


의외로 주먹이 아니라 말로 돌아온 대답에 효진은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안심했다.

창윤은 효진과 함께 자신의 침소로 되돌아와서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나인들에게 호위무사와 있으니 모두 물러가라 명했다. 방 안에 촛불 하나를 켜 두고 문제의 '그것'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서로가 이 정도로까지 서먹서먹할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 막 쌍방 삽질이었다는 걸 깨달은 둘에게 그딴 서먹한 분위기가 문제될 수는 없었다. 대충 이불 근처에 던져 두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입을 맞췄다. 창윤의 얼굴 곳곳에 내려앉은 효진의 버드키스는 지나간 자리마다 고운 홍조를 띠게 만들었다.



효진의 옷을 입는다면 한 치수는 더 남을 듯한 얇은 허리와 마른 다리, 달처럼 하얀 몸에 새겨진 붉은 꽃들, 간헐적으로 신음이 섞여 나오는 호흡.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자극들이었다. 효진은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몇 번이고 더 입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자는 과감히 무시해 버리고 후자를 택했다. 모든 것이 효진의 것이어야만 했고, 이제는 당연하게도 효진의 것이었다. 그러니 창윤 이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올 수밖에. 가을밤 보름달보다 아름다운 창윤의 눈동자 안에는 오직 효진만이 비추어졌다.


항아, 달의 여신. 효진은 자신의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창윤을 내려다보며, 달의 여신 항아가 떠올랐다. 그녀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가히 효진의 항아는 창윤이었다. 중국 신화 속에서 잠시 나와서 21세기 대한민국 왕자의 몸으로 놀러 왔구나 싶었다. 효진은 기꺼이 자신의 항아인 창윤이 거니는 땅이 되어 줄 수 있고, 창윤만을 위한 불사약을 제조하는 옥토끼가 되어 줄 수 있었다. 자신이 달이라면 태양의 빛을 받아 창윤을 빛나게 만들고, 지구의 궤도를 버리는 대신 창윤만 좇을 테니.

시린 겨울 바람과 달리 포근한 달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효진은 곱게 내려앉은 속눈썹에 홀린 듯 다가가, 눈 위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너의 달이 되어 줄 테니, 너의 달을 떠나지만 말아 줘.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야."



Epilogue.


"꺾어 온 건 아니구, 땅에 그렇게 떨어져 있길래."


어디선가 백목련을 주워 온 세자는 그대로 호위무사에게 건넸다. 백목련, 이루지 못할 사랑. 호위무사의 어머니는 플로리스트가 직업이라,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웬만한 꽃말은 줄줄 외우고 있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호위무사가 영문도 모른 채 백목련을 들고 서 있으니, 곧 세자가 이름을 불러 왔다.


"효진아."

"네, 저하."

"그거 꽃잎 개수 좀 세어 보렴."


이 꽃으로 꽃잎점이라도 치려는 걸까. 헷갈렸다. 세자가 꽃말을 알고 가져온 건지, 모르고 가져온 건지. 아마 백옥 같은 꽃잎이 예뻐서 무작정 꺾어, 오지 않고 들고 왔을 것이다. 지금은 벚나무가 활짝 개화했으니 이쯤이면 백목련은 땅바닥에서 갈색 물이 가득한 채로 뒹굴고 있을 텐데, 용하게도 모양새가 완전한 걸 찾아온 창윤도 대단했다.


"여섯 개네요."

"어... 아홉 개 아니구?"

"맨 밑에 세 개는 꽃받침이에요. 저희 어머니 꽃집 하시는 거 아시잖습니까."

"맞다, 그랬지... 그럼 여섯 개의 질문을 할 테니, 대답도 여섯 개가 있어야 한다. 대답 먼저 하고 하나를 떼고, 대답 못 하는 건 그냥 뗴도 되고. 그럼 내가 알아서 넘어갈 테니. 알아들었느냐?"

"네, 저하."


톡- 꽃잎 하나가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똑똑해서 마음에 안 드는구나. 질문에 포함 안 시킬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질문, 네가 사는 곳은 어디지?"

"본가의 위치를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 이번 건 조금 애매했구나. 그게 아니구, 네가 사는... 그래, 행성 정도가 좋겠구나. 행성 말이다."

"같은 곳에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구에."


톡- 호위무사의 발 앞에 두 개의 꽃잎이 놓였다.


"네가 살고 있는 지구란 곳에는 뭐가 있는지 말하거라!"

"저하, 점점 하대하시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지구엔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걸요."


톡- 세 번째 꽃잎이 입받침을 떠났다.


"내 위치상 네게 하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 불만이면 왕자 하든가."

"당연히 아무 문제도 없지요. 제가 감히, 어찌 그 자리를 보겠습니까."

"그럼 대답이나 열심히 하거라. 다음은 네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

"의식주와 제 사람들. 이렇게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감, 히, 세자에게 역질문은 금지니 조심하려무나."


톡- 이번에는 어이가 없어 보이는 호위무사와 그대로 눈을 맞춘 세자가 웃음을 머금고 꽃잎을 뜯었다.


"이건 잘 나가다가 사심 질문. 네 사람들 중에 나도... 있는지 궁금하구나."

"그럼 저도 잘 대답하다가 노코멘트로 하겠습니다."


톡-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민 세자와 태연하게 꽃잎을 뜯은 호위무사의 발 사이에 다섯 개의 꽃잎이 흩어졌다.


"흥이구나. 마지막은 그냥 넘기는 거 없고, 답도 존재하니 틀리기만 해 보거라."

"말씀하시지요."

"네가 사는 이 지구에 존재하는 것들 중 네게 필수적인 것들을 합친 것을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글쎄, 너무 어렵습니다. 저하, 힌트요."

"달갑진 않지만 난 착하니까 허락해 주마. 힌트는 시옷, 시옷이다. 야하고 그런 거 아니니, 절대로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거라."


톡- 마지막 꽃잎이 낙하했다.


"세상을 말씀하시는 거죠, 저하."


세자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히 붙어 있는 세 개의 꽃받침을 들고 서 있는 호위무사의 손을 잡아 자신의 옆에 앉혔다.


"네가 나의 세상이야."

"네?"

"네가 나의 지구, 공기, 하늘, 땅, 그 모든 것들이잖아. 난 네가 있어야 살아."


호위무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 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나는 너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잖아."

"그래? 좋아. 그럼 약속해. 절대로 내 곁에서 사라지지 말 것, 그리고 평생 그 마음을 유지할 것. 나의 달에게 명하는 것이다."


창윤이 효진에게 내리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명령이었다.


"그 명을 기꺼이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항아에게 평생을 약속드리지요."


곱고도 은은한 연노란색 달빛 한복을 입은 세자와, 세자가 특별 주문 제작으로 선물한 붉은 장밋빛 한복을 입은 호위무사. 두 사람은 꼭 1년 전처럼 화창한 벚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영원을 나눴다. 1년 전과 다른 점이라고는 이제 둘은 23살이라는 것과, 관계가 조금 더 특별해졌다는 것이다.

ONF RPS @Autumn_22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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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션] 나의 항아에게. 06